필수의료 붕괴 위기…'정책 패키지'로 방어 나선 보건복지부

입력 2024-02-27 15:42   수정 2024-02-27 15:43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담은 정부의 필수의료 대책에 의사들이 반발하면서다.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 현실과 가파른 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2000명 확대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반면 의료계는 “의사 수는 지금도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수의료 대책 뜯어보니
갈등의 시발점이 된 의대 정원 확대는 정부가 지난 1일 발표한 ‘필수의료 4대 정책 패키지’의 핵심 중 하나다.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로 대표되는 필수의료 분야의 부족한 의사 수를 확충하기 위해선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구체적으로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묶여있는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5년간 2000명씩 늘린다는 방침이다. 10년 후인 2035년에는 의사 수가 약 1만5000만명 모자를 것이란 전망에 근거한 숫자다.

이와 달리 의료계는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면 의료 수요도 감소할 것이란 논리다. 하지만 정부 측 판단은 다르다. 병원 이용이 많은 노령인구 증가로 2035년이면 입원일수가 45% 늘며 의료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의사 고령화로 은퇴 의사 수가 늘어나는 최근 흐름도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의대 교육기간 6년, 전공의 수련기간 4~5년을 고려할 때 2025년 의대 증원 효과는 빠르면 2031년, 늦으면 2036년 이후에야 나타난다”며 “의사 부족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생각하면 1년이라도 먼저 의사 수 증대 규모를 늘리는 것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필수의료 패키지에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많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업무 강도 대비 턱없이 부족한 보상 때문이라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업무 강도가 높지만 저평가된 중증응급, 중증정신, 소아 등과 관련된 건강보험 수가(의료행위 대가)를 집중 인상하기로 했다. 소아과의 경우 1세 미만 소아가 일반병동에 입원했을 때 수가 가산율을 기존 30%에서 50%로 확대할 방침이다. 병의원급 신생아실·모자동실의 입원료는 50% 인상하고 소아 중환자실 입원료도 높인다.

진료 양에 따라 수가가 매겨지는 행위별 수가제도 보완하기로 했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선 진료행위의 난이도, 위험도, 시급성, 대기시간 등 필수의료 분야에 두드러진 특징이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보완형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하는 등 2028년까지 필수의료 보상 강화에 10조 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필수의료 특성이 수가에 제때 반영되도록 의료행위의 상대가치 개편 주기를 현행 5~7년에서 2년으로 단축해 보상 불균형을 신속하게 조정할 예정이다.
○무너지는 지역의료에 대응
정부는 지역에서 필수의료 의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추진한다. 먼저 의대 지역인재 의무선발 비율을 현행 40%에서 60% 이상으로 높인다. 지역인재전형 비중이 높을수록 정원 증원분을 더 배분해 전형 확대를 유인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방에서 근무하고자 하는 의료인을 위한 보상도 강화한다. 의대생이 장학금과 수련비용을 지원받고 교수 채용 할당, 거주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 대신 일정기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지역의료리더 육성 제도’가 대표적으로 검토된다. 의사가 충분한 수입과 거주 지원을 보장받는 것을 조건으로 지역 필수의료기관과 장기근속 계약을 맺는 ‘지역필수의사 우대계약제’ 등도 거론된다. 필수의료가 취약한 지역에 더 높은 수가를 적용하는 ‘지역수가’ 도입도 추진한다. 중소 진료권 단위로 의료 수요·공급 등을 분석해 취약 정도에 따라 추가 보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혼합진료 금지도 추진한다. 혼합진료는 건보가 적용되는 급여 진료에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비급여 진료를 끼워파는 것이다. 백내장 수술을 할 때 비급여인 다초점렌즈 삽입을 권하는 식이다. 이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늘릴뿐 아니라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돼왔다. 이에 정부는 환자가 혼합진료를 받을 경우 급여 항목을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으로 간주하는 방식으로 혼합진료를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혼합진료 금지는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구체적인 금지 대상과 적용방안이 검토된다.
○처벌 완화 등 의료계 목소리도 반영

그간 의료계가 강력히 요구하던 형사처벌 부담 완화도 추진하기로 했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 인력이 과중한 민·형사상 부담으로 진료 현장을 떠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모든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하는 것을 전제로 피해자 의사에 반해 형사처벌을 할 수 없게 하고, 피해 전액을 보상하는 종합보험에 가입했을 때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해도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는 내용을 담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연내 입법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는 의료분쟁조정법상 조정·중재 참여를 조건으로 이뤄진다. 모든 의사 또는 의료기관의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대신 위험 부담이 높은 필수진료과, 전공의 등에 대한 보험료 지원도 추진한다.

아울러 특례법 도입 전이라도 의료사고와 관련한 검찰 수사와 사건 처리 절차를 선제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의료인에 대한 불필요한 소환조사는 자제하고 중과실이 없는 응급의료 사고에 대해선 형 감면 규정을 적극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지원도 늘린다. 기존에는 최대 3000만원 한도 내에서 국가가 70%,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30% 분담했다. 이를 앞으로는 국가지원 100%로 바꾸고 현실을 반영하여 지원 한도도 높인다.

격무에 시달리는 전공의를 위해 근무여건도 개선한다. 현재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 연속근무 상한선은 현재 36시간(응급상황시 40시간)이다. 정부는 전공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36시간 상한선을 낮추는 시범사업 모델을 마련한 뒤 연속근무 시간 축소를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공의에 대한 갑질, 폭행 등 구태가 근절될 수 있도록 권익 보호 창구를 설치하고 주기적인 실태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정부는 “필수의료를 위한 단기 과제는 현장에서 빠르게 체감할 수 있도록 1~2년 내 집중 추진해 완료하겠다”며 “비급여 제도 개선 등 구조개혁 과제에 대해선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실천 로드맵을 신속히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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